
노출 콘크리트와 빛만으로 감동을 주는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 빛의 교회. [출처: The New York Times]
안도 다다오. 디자인이나 문화, 공간에 관심 많은 분에게는 익숙한 건축가죠. 이름이 낯선 분들도, 위 사진처럼 노출 콘크리트와 빛을 활용한 건물은 한 번쯤 보셨을 거예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우리나라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 설계를 총괄한 인물로도 유명한데요. 1969년부터 지금까지, 56년 넘는 세월 동안 건물을 설계하며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의 건축물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건네고 있는 걸까요?
‘한 줄기 빛’을 찾기 위해 싸웠던 삶
안도의 작품들을 보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우직하고 단단하다는 인상이 듭니다. 평생을 역경에 맞서며 자신의 길을 찾았던 그의 삶을 닮았는데요. 1941년, 무역상 집안에서 태어난 안도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환경이었지만, 안도의 외할머니는 약속을 잘 지키고, 시간을 소중히 하라는 규칙을 엄하게 가르쳤죠.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탐구하고 결정할 수 있게 배려했어요.

안도는 프로 복서 경험이 일과 삶을 대하는 관점의 뿌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출처: 한겨레]
안도 본인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 보탬이 되려 노력했고, 17살에는 프로 복서로 활동하기도 했죠. 재미 삼아 시작했지만, 한 달도 안 돼 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실력도 좋았습니다. 링에 올라 대전료를 벌며 언젠가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갔죠. 그러나 20살, 일본 복싱의 전설로 불렸던 파이팅 하라다(Fighting Harada)와의 경기에서 패배하며 그는 재능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이라 생각했던 복싱을 그만두게 되죠.
미래를 고민하던 안도는 열네 살 때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집을 증축하는 공사를 위해 찾아온 목수가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건축이란 게 참 재미있는 일이구나’ 생각했거든요. 그 기억을 지표 삼아, 안도는 생업에 뛰어들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다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헌책방에서 건축 관련 책들을 사서 읽었고요. 의지할 스승도 동료도 없었지만, 안도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하나하나의 일이 매번 진지한 승부였고, 감사한 마음으로 임할 뿐이었어요. 자질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학력도, 경제력도, 사회적으로 나를 받치거나 막아주는 방패도 없었거든요. 당시의 내가 가진 건 핸디캡뿐이었습니다.”
_안도 다다오, ELLE DECOR 인터뷰에서, 2023.3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준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 [출처: ArchDaily]
그런 그에게 ‘건축가’라는 길을 보여준 존재는 현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였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르코르뷔지에 작품집』속 건축물들이 안도에게 큰 영감을 주었죠. 작품집 속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따라그리며, 안도는 홀로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1965년에는 일을 전부 그만두고, 자신의 우상을 만나기 위해 7개월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비록 르코르뷔지에는 세상을 떠났기에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유산은 만날 수 있었죠. 그곳에서 안도는 자신이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지 마음 깊이 깨닫게 됩니다.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을 보고, 빛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빛은 곧 희망이었습니다. 저는 희망이 있는 건축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_안도 다다오, 뮤지엄 산 기자간담회에서, 2023.4
롱샹 성당뿐만 아니라,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들은 모두 자연광을 중시해 만들어졌습니다. 미적인 부분을 넘어 자연의 빛과 공기가 통하는, 건강한 생활환경을 고민했기 때문이죠. 이런 철학은 안도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대화하는 장소. 사회와 소통하는 장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 안도는 그런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죠.
치열하고 끈질기게 인간적인 건축을 탐구했다, 복싱하듯이.


지금까지도 ‘안도 세계관’의 기준이 되어주는 스미요시 연립주택. [출처: (위)ArchEyes, (아래)METALOCUS]
안도 다다오의 첫 번째 작품은 1976년 공개된 스미요시 연립주택이었습니다. 외부와 통하는 창이 하나도 없고, 차가운 느낌의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파격적이라는 평을 받았어요.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많았고요. 하지만 안도는 ‘다소 불편한 점이 있어도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며 생활할 때, 진정으로 쾌적한 삶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늘이 훤히 보이도록 뻥 뚫린 천장, 생활 기능에 맞춰 수직적으로 분리한 설계, 곳곳에 배치한 채광창과 환기구 등으로 일상생활을 위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죠.
그래서일까요. 이 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부부는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게 매력이다”라고 말합니다. 비가 오면 침실에서 화장실까지 우산을 쓰고 가야 하는데도 말이죠. 일상의 번거로움마저 납득시킨 안도는 이 작품으로 1979년 일본건축협회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적인 건축’을 선보이기 시작했죠. 지금까지도 가장 잘 알려진 ‘빛의 교회’부터 버려진 섬 전체를 예술과 자연이 조화되는 갤러리로 부활시킨 ‘나오시마 프로젝트’, 노출 콘크리트 기둥과 비처럼 쏟아지는 빛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인상적인 ‘LG아트센터 서울’까지. 안도 다다오는 꾸준히 국경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펼쳐왔습니다.


빛과 그림자,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돋보이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들. [출처: (위)Noblesse, (아래)Heypop]
안도 다다오 공간의 또 다른 상징은 빛입니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면 갑자기 빛이 쏟아지는 공간이 나타나면서, 차갑게 보이는 콘크리트 벽에도 따스한 자연광이 스며드는 설계가 많죠.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에서 발견한 빛의 가치, 그리고 그 빛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1989년 빛의 교회를 건설할 때 안도는 콘크리트 벽을 십자가 형태로 자르고, 그 틈으로 빛이 비치게 설계했는데요. 많은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유리 벽을 넣지 않았죠.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추위쯤은 참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일화도 유명합니다.
“내게 건축은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장치다. 때론 그 소통이 기존 사회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나는 언제나 편리하고 쾌적하게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환영받지 못할 때도 있다. 비판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다음번 건축의 양식으로 삼되, 근본적인 생각과 일하는 태도를 바꿀 마음은 없다.”
_안도 다다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2022.2
안도의 공간들은 항상 실용성과 불편함,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안도는 그런 메시지들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10대 시절 글러브를 끼고 링에 오를 때처럼, 우직하게 부정적인 평가를 마주하고, 자신의 철학으로 반격했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당연히 큰 불안이 따른다. 그걸 뛰어넘어야 비로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그의 도전 정신은 어느덧 60주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굳이 더 힘든 길을 택한 나의 여정이 사람들에게 빛이 되길 바라며
이제는 이름 자체로 스타일이 된 안도 다다오. 2009년과 2014년, 두 차례의 암 선고를 받고 장기 5개를 제거하는 대수술까지 받았지만, 84세인 지금도 그는 왕성하게 활동 중입니다. 영감의 원천과 꾸준히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는 말에, 안도는 담담하게 답합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었기에, 힘들 걸 알면서도 굳이 더 어려운 선택을 했다”고 말이죠.
그런 마음이 담긴 안도의 건축물들은 애써 방문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빛과 그림자, 콘크리트와 자연이 만나는 독특한 공간을 통해 ‘긴 어둠을 지나 빛을 맞이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죠. 지금을 힘껏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것, 좌절하거나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공간이 되어주는 것. 이런 것들이 안도 다다오의 작품들이 사랑받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고요하지만 묵직하게, 위로와 사색의 시공간이 되어주는 안도의 작품들. [출처: Noblesse]
그런 마음이 담긴 안도의 건축물들은 애써 방문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빛과 그림자, 콘크리트와 자연이 만나는 독특한 공간을 통해 ‘긴 어둠을 지나 빛을 맞이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죠. 지금을 힘껏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것, 좌절하거나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공간이 되어주는 것. 안도의 작품들은 세계 곳곳에서 그런 존재가 되어 왔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자는 결심. 그 마음을 등대 삼아 안도는 지금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출처: Noblesse]
안도의 공간은 말합니다. 쉽지 않은 삶이지만 그럼에도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은 반드시 있다고. 그걸 붙잡고 한 걸음씩 나아가라고 말이죠. 안도의 건축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도,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고 어두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일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가올 봄에 문을 열 나오시마 신미술관이나 뮤지엄 산을 방문해보면 어떨까요? 미처 생각 못했던 고요한, 하지만 밝게 빛나는 위로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노출 콘크리트와 빛만으로 감동을 주는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 빛의 교회. [출처: The New York Times]
안도 다다오. 디자인이나 문화, 공간에 관심 많은 분에게는 익숙한 건축가죠. 이름이 낯선 분들도, 위 사진처럼 노출 콘크리트와 빛을 활용한 건물은 한 번쯤 보셨을 거예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우리나라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 설계를 총괄한 인물로도 유명한데요. 1969년부터 지금까지, 56년 넘는 세월 동안 건물을 설계하며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의 건축물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건네고 있는 걸까요?
‘한 줄기 빛’을 찾기 위해 싸웠던 삶
안도의 작품들을 보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우직하고 단단하다는 인상이 듭니다. 평생을 역경에 맞서며 자신의 길을 찾았던 그의 삶을 닮았는데요. 1941년, 무역상 집안에서 태어난 안도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환경이었지만, 안도의 외할머니는 약속을 잘 지키고, 시간을 소중히 하라는 규칙을 엄하게 가르쳤죠.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탐구하고 결정할 수 있게 배려했어요.
안도는 프로 복서 경험이 일과 삶을 대하는 관점의 뿌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출처: 한겨레]
안도 본인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 보탬이 되려 노력했고, 17살에는 프로 복서로 활동하기도 했죠. 재미 삼아 시작했지만, 한 달도 안 돼 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실력도 좋았습니다. 링에 올라 대전료를 벌며 언젠가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갔죠. 그러나 20살, 일본 복싱의 전설로 불렸던 파이팅 하라다(Fighting Harada)와의 경기에서 패배하며 그는 재능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의 길이라 생각했던 복싱을 그만두게 되죠.
미래를 고민하던 안도는 열네 살 때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집을 증축하는 공사를 위해 찾아온 목수가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건축이란 게 참 재미있는 일이구나’ 생각했거든요. 그 기억을 지표 삼아, 안도는 생업에 뛰어들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다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헌책방에서 건축 관련 책들을 사서 읽었고요. 의지할 스승도 동료도 없었지만, 안도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냈습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준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 [출처: ArchDaily]
그런 그에게 ‘건축가’라는 길을 보여준 존재는 현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였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르코르뷔지에 작품집』속 건축물들이 안도에게 큰 영감을 주었죠. 작품집 속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따라그리며, 안도는 홀로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1965년에는 일을 전부 그만두고, 자신의 우상을 만나기 위해 7개월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비록 르코르뷔지에는 세상을 떠났기에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유산은 만날 수 있었죠. 그곳에서 안도는 자신이 어떤 건축을 하고 싶은지 마음 깊이 깨닫게 됩니다.
롱샹 성당뿐만 아니라,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들은 모두 자연광을 중시해 만들어졌습니다. 미적인 부분을 넘어 자연의 빛과 공기가 통하는, 건강한 생활환경을 고민했기 때문이죠. 이런 철학은 안도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대화하는 장소. 사회와 소통하는 장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 안도는 그런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죠.
치열하고 끈질기게 인간적인 건축을 탐구했다, 복싱하듯이.
지금까지도 ‘안도 세계관’의 기준이 되어주는 스미요시 연립주택. [출처: (위)ArchEyes, (아래)METALOCUS]
안도 다다오의 첫 번째 작품은 1976년 공개된 스미요시 연립주택이었습니다. 외부와 통하는 창이 하나도 없고, 차가운 느낌의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파격적이라는 평을 받았어요.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많았고요. 하지만 안도는 ‘다소 불편한 점이 있어도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며 생활할 때, 진정으로 쾌적한 삶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늘이 훤히 보이도록 뻥 뚫린 천장, 생활 기능에 맞춰 수직적으로 분리한 설계, 곳곳에 배치한 채광창과 환기구 등으로 일상생활을 위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죠.
그래서일까요. 이 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부부는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게 매력이다”라고 말합니다. 비가 오면 침실에서 화장실까지 우산을 쓰고 가야 하는데도 말이죠. 일상의 번거로움마저 납득시킨 안도는 이 작품으로 1979년 일본건축협회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적인 건축’을 선보이기 시작했죠. 지금까지도 가장 잘 알려진 ‘빛의 교회’부터 버려진 섬 전체를 예술과 자연이 조화되는 갤러리로 부활시킨 ‘나오시마 프로젝트’, 노출 콘크리트 기둥과 비처럼 쏟아지는 빛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인상적인 ‘LG아트센터 서울’까지. 안도 다다오는 꾸준히 국경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펼쳐왔습니다.
빛과 그림자,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돋보이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들. [출처: (위)Noblesse, (아래)Heypop]
안도 다다오 공간의 또 다른 상징은 빛입니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면 갑자기 빛이 쏟아지는 공간이 나타나면서, 차갑게 보이는 콘크리트 벽에도 따스한 자연광이 스며드는 설계가 많죠.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에서 발견한 빛의 가치, 그리고 그 빛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1989년 빛의 교회를 건설할 때 안도는 콘크리트 벽을 십자가 형태로 자르고, 그 틈으로 빛이 비치게 설계했는데요. 많은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유리 벽을 넣지 않았죠.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추위쯤은 참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일화도 유명합니다.
안도의 공간들은 항상 실용성과 불편함,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안도는 그런 메시지들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10대 시절 글러브를 끼고 링에 오를 때처럼, 우직하게 부정적인 평가를 마주하고, 자신의 철학으로 반격했죠.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당연히 큰 불안이 따른다. 그걸 뛰어넘어야 비로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그의 도전 정신은 어느덧 60주년을 바라보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굳이 더 힘든 길을 택한 나의 여정이 사람들에게 빛이 되길 바라며
이제는 이름 자체로 스타일이 된 안도 다다오. 2009년과 2014년, 두 차례의 암 선고를 받고 장기 5개를 제거하는 대수술까지 받았지만, 84세인 지금도 그는 왕성하게 활동 중입니다. 영감의 원천과 꾸준히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는 말에, 안도는 담담하게 답합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었기에, 힘들 걸 알면서도 굳이 더 어려운 선택을 했다”고 말이죠.
그런 마음이 담긴 안도의 건축물들은 애써 방문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빛과 그림자, 콘크리트와 자연이 만나는 독특한 공간을 통해 ‘긴 어둠을 지나 빛을 맞이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죠. 지금을 힘껏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것, 좌절하거나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공간이 되어주는 것. 이런 것들이 안도 다다오의 작품들이 사랑받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고요하지만 묵직하게, 위로와 사색의 시공간이 되어주는 안도의 작품들. [출처: Noblesse]
그런 마음이 담긴 안도의 건축물들은 애써 방문한 사람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빛과 그림자, 콘크리트와 자연이 만나는 독특한 공간을 통해 ‘긴 어둠을 지나 빛을 맞이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죠. 지금을 힘껏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것, 좌절하거나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공간이 되어주는 것. 안도의 작품들은 세계 곳곳에서 그런 존재가 되어 왔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자는 결심. 그 마음을 등대 삼아 안도는 지금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출처: Noblesse]
안도의 공간은 말합니다. 쉽지 않은 삶이지만 그럼에도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은 반드시 있다고. 그걸 붙잡고 한 걸음씩 나아가라고 말이죠. 안도의 건축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도,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고 어두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일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가올 봄에 문을 열 나오시마 신미술관이나 뮤지엄 산을 방문해보면 어떨까요? 미처 생각 못했던 고요한, 하지만 밝게 빛나는 위로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