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낡은 서점의 경이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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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책장 뒤에 숨어 절망 속에서 자신을 끌어올려 줄 한 문장을 찾고 있다. 낙후한 도심의 서점을 찾아다니는 J처럼. 그가 낡은 서점을 찾는 이유는 단순하다. 오래된 서적이 뿜어내는 매캐한 먼지 냄새와 눅눅함을 머금은 나무, 시간을 통과하며 축적된 냄새의 결이 온전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J는 구원과도 같은 문장을 찾아 다녔지만, 결과적으론 낡은 서점에서 마주한 미지의 존재감에 매료되었다. 그에 매력을 느낀 뒤 번잡한 도심을 떠나 낙후한 도심으로, 멸균 처리된 백색의 공간 같은 프렌차이즈 서점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공고한 영향력이 두드러지는 동네 서점으로 향했다. J가 처음부터 현대식 서점의 편리함을 터부시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베스트셀러로 장식된 평대 위에 자신이 찾는 문장이 없음을 깨닫고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우연히 맞닥뜨린 옛 서점에서 경험한 기억과 냄새들이 너무도 선명해, 비슷한 경험을 찾아 다니게 된 것이다. J는 오래된 서점을 찾을 때마다 그날을 회상한다.


재개발 스티커를 붙인 빈 상가가 기다랗게 이어지는 한적한 도로변 끝, 신호가 고장 난 횡단보도 앞 서점의 입간판이 노랗게 반짝였다. 건축물이 축조된 시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부옇게 변색된 붉은 벽돌이 견뎌낸 시간을 말하듯, 서점은 지난한 세월을 오롯이 담아낸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게 전면의 유리창은 블라인드가 내려져 안을 살필 수 없고, 입구에는 유리 몇 조각과 출처를 알 수 없는 파편이 덕지덕지 엉겨 있다. 손님을 기다리는 서점이라기보다 싸늘하게 식은 유물 같은 느낌이지만, J는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처럼 망설임 없이 출입문의 손잡이를 당겼다. 바깥의 풍경과 달리 서점 안은 노란 조명 아래 부유하는 먼지와 눅진한 공기, 낡은 서적이 내뿜는 입자 덕분에 어딘가 고요하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묵직한 나무 문의 끼기긱거리는 마찰음과 문틈에 매달린 풍경이 서로 맞닿아 찰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J가 공간에 넉넉히 배어 있던 고요함을 깨뜨리고 침입한 순간, 테이블에 나른히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던 백발의 여인이 콧대 위에 비스듬히 걸쳐져 있는 안경을 고쳐 쓰고 J를 바라봤다. 피로가 누적됐지만 또렷하고, 눈꼬리에는 무게를 얹은 얼굴. 낯선 고객을 응시하던 여인은 다시 활자로 시선을 옮기고, J는 천천히 서점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작은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공기 중 작은 입자의 먼지들이 유영하는 모습은 마치 늦은 밤 숲속에서 발견한 무수한 빛 같아 보였다. 분명 목적이 있는 방문이었지만, 금방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J는 어쩌면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경험이 아니라, 시간을 느끼는 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책장을 채운 오래된 도서 중 오래된 타이포로 명시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책장의 거슬거슬한 감촉이나 뭉개진 잉크, 누군가 휘갈겨 쓴 메모 같은 것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종이들이 작은 바람을 일으킬 때마다 물에 젖은 풀 냄새가 느껴졌다. 숲에 당도한 사람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J 역시 새삼스러운 냄새의 자취를 느꼈다. 그러나 J의 마음과 별개로 벽면에는 철거 안내 경고문이 부착돼 있었다. 본 건물은 철거가 확정됐으며, 무단 점거 시 엄정 대응한다는 빨갛고도 위협적인 문장들. 이 공간을 분명히 채우고 있는 것은 경험의 중첩이다. 단시간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없앨 수 있는가. 그날 J는 책을 한 권 골라 데스크로 가져갔고, 백발의 여인은 내민 손을 꾸욱 밀어내며 책값을 받지 않겠다 한사코 사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다시 찾은 서점은 비어 있었다. 문을 흔들어 봐도 애꿎은 풍경 소리만 울려퍼질 뿐이었다. J는 단 하루의,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의 경험이었지만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날의 분위기와 냄새들, 서점에 아로새겨진 수많은 시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와닿았다고. 지금도 낡은 서점을 찾는 이유는 시간이라는 감각이 배제되지 않은 공간에 머물고 싶기 때문이라고. 그 때 자신에게 쥐어준 책은 모쪼록 남은 서점들을 지켜달라는 작은 뇌물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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